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든 뱅크스 (문단 편집) == 평가 == 1960년대 [[레프 야신]]과 1970년대 [[디노 조프]]의 사이를 잇는 골키퍼계의 본좌이자 [[레프 야신]]과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골키퍼, 그리고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그나마 뱅크스에 비견될 만한 잉글랜드 골키퍼는 피터 쉴튼이 유일한데, 쉴튼은 뱅크스와는 달리 '압도적인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한 적이 없다. '전성기의 길이'로 따지면 10대부터 40대까지 미친 롱런을 보여주고 국가대표팀에서 20년 넘게 주전경쟁한 쉴튼이 뱅크스를 압도하겠지만...] 1966년 월드컵 이후 스타로 발돋움하여 1972년 부상 직전까지 약 6년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으며(물론 유로 1968의 디노 조프나 1970 월드컵의 마수르키에비츠처럼 단기적으로 뱅크스급의 임팩트를 남긴 골키퍼들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1966~1972년 최고의 골키퍼가 뱅크스라는 의견에 당대 선수들도, 전문가들도 딱히 이견이 없다.) 특히 1970년 펠레의 헤더를 막아낸 이후로 더한 명성을 얻었고 교통사고 부상 직전까지 폼을 잘 유지하며 역대 골키퍼 중 야신 바로 다음으로 거론될 만한 위치까지 올라섰다. 실제로 1981년 플라카르의 올타임 XI 투표에서 야신, 사모라에 이어 골키퍼 중 득표율 3위를 기록했다. 현역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0년(월드컵 이전이다) 월드스포츠의 '지난 20년간 최고의 팀' 투표에서는 지우마르, 베아라 등을 제치고 야신에 이은 2위에 올랐으며,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gomez33&logNo=222258087178&referrerCode=0&searchKeyword=%EC%B9%98%EB%B2%84%EC%8A%A4|당시 전문가들이 선정했던 풋볼 리그 올스타팀에도 거의 매번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로 이름을 올렸다.]] 뱅크스의 현역 시절 유명한 별명 중에는 'World No. 1'이 있었을 정도로 야신을 잇는 골키퍼계의 상징이었다. IFFHS에서는 뱅크스를 20세기 골키퍼 중 2위로 선정했다. 디노 조프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2위에 등극한 것이다. 1위는 레프 야신. 이후에도 2013년 월드사커의 올타임XI 투표나 프랑스 풋볼이 자체적으로 선정한 역대 골키퍼 Top 10에서 모두 2위에 선정되는 등 여전히 그 위상이 굳건하다. 그러나 2020년 발롱도르 드림팀 투표에서는 8위에 그치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클럽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저조하고 월드컵 활약이 뛰어나서 그런지 유럽보다는 남미 쪽에서 평가가 좋은 인물이다. 이는 비슷한 스타일의 커리어를 보낸 [[바비 무어]]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그 평가치가 거의 야신에 맞먹을 정도로 높다. 이는 선술한 1981년 플라카르 올타임XI 투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토스탕]]이나 [[마르코 판바스턴]], [[제프 마이어]] 같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뱅크스도 '부상이 아쉬운 선수'를 거론할 때 늘 거론된다. 특히 뱅크스는 경기 중 손가락이 부러지든, 다리가 부러져서 철심을 박든 개의치 않고 금세 부상에서 회복하여 몇 경기만에 복귀할 정도로 놀라운 내구성과 성실성을 자랑했으나, 축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교통사고로 커리어를 일찍 마감하고 말았다는 점이 더더욱 아쉽다. || [[파일:BanksS.jpg|width=100%]] || || [[브리타니아 스타디움]] 앞의 뱅크스 동상 || 뱅크스의 메이저 트로피 수는 커리어를 통틀어 단 3개뿐이다. 그러나 레스터나 스토크같이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던 팀에서 커리어의 90% 이상을 보냈고, 특히 스토크는 지금까지도 메이저 대회 우승이 단 1회인데, 그게 다름아닌 뱅크스와 함께 달성했던 1972년 리그컵 우승이다. 스토크 시티 홈구장에 동상까지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다만 아무래도 소속팀의 한계 때문에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의 영향이 있었는지, 발롱도르 투표에서 유효표를 받은 것은 1966년의 14위, 1970년의 10위, 1972년의 7위가 전부다. 뱅크스의 국가대표팀 기록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총 73경기에서 0.78실점률을 기록했고 35경기는 무실점으로 지켜냈다. 그리고 뱅크스가 나온 73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단 9번만 패했다. 야신, 조프, 마이어, 노이어, 칸, 부폰, 카시야스, 슈마이켈 등 뱅크스와 비슷한 급으로 거론되는 역대 최고의 골키퍼들이 모두 A매치에서 4실점 이상 기록한 적이 있는 반면, 뱅크스는 A매치 73경기에서 단 한 번도 4실점 이상 기록한 적이 없다[* 수비진 빨도 아니다. 이 시기 잉글랜드는 1964년에 뱅크스가 출전하지 않았던 브라질전에서 5실점으로 무너지며 5:1 패배를 당한 기록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리하자면, 뱅크스는 중하위권 팀에서 커리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고, 거기에 더해 국가대표팀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을 통해 세계 축구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며, 레프 야신 다음 역대 No. 2 골키퍼 자리를 두고 잔루이지 부폰, 디노 조프, 마누엘 노이어, 피터 슈마이켈, 이케르 카시야스등과 경합할 수 있는 레전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